한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F1 드라이버 시장이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막스 베르스타펜이 레드불과 2030년까지 계약을 연장한 데 이어 랜도 노리스도 맥라렌과 장기 계약을 맺으면서 메르세데스, 페라리, 맥라렌, 레드불 등 상위권 팀의 핵심 시트가 당분간 굳어졌다. 이제 관심은 누가 먼저 현재의 팀 내 경쟁에서 밀려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움직이느냐에 쏠린다.
베르스타펜은 올여름 메르세데스와 맥라렌으로의 이적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됐다. 하지만 결국 레드불에 남기로 하면서 2030년까지 팀과 함께하게 됐다.
노리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차지하며 맥라렌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 잡은 만큼 장기적으로 팀에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고, 이번 재계약으로 그 예상이 공식화됐다.
오히려 메르세데스의 경우 키미 안토넬리의 급성장이 베르스타펜 영입 필요성을 낮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토넬리는 올 시즌 초반부터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드라이버 챔피언십 선두에 올라섰고, 메르세데스와 함께 성장할 시간이 충분한 20세의 젊은 드라이버다.
메르세데스는 안토넬리와 조지 러셀 조합을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러셀 역시 여러 차례 팀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페라리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샤를 르클레르는 지난 6월 계약을 연장했고, 41세의 루이스 해밀턴은 올해 들어서도 당장 F1을 떠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반복해서 밝혔다.
결국 단기적으로는 F1 상위권 팀의 자리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 안정된 구도가 2027년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러셀과 피아스트리, 팀 내 경쟁이 변수
메르세데스와 맥라렌은 전통적으로 두 드라이버 가운데 한 명에게 명확한 우선권을 주는 운영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지 러셀과 오스카 피아스트리가 팀 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은 있다.
노리스는 지난해 피아스트리와의 챔피언십 경쟁에서 앞섰고, 2026년 새로운 규정에 맞춰진 머신에도 호주 출신 팀 동료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메르세데스에서는 러셀이 시즌 초반 우승 후보로 평가받았지만, 현재는 안토넬리에게 확실히 밀리고 있다. 특히 안토넬리는 이제 막 20세가 된 만큼 앞으로 발전할 여지가 상당하다.

물론 러셀과 피아스트리가 곧바로 팀을 떠날 이유가 생긴 것은 아니다. 두 선수 모두 아직 현재 팀에서 상황을 뒤집을 기회를 충분히 갖고 있다.
다만 앞으로 18개월 동안 한쪽이 계속해서 팀 동료에게 밀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첫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팀으로 옮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해밀턴 은퇴가 페라리 시트를 연다
가장 현실적인 변수 가운데 하나는 해밀턴의 미래다. 해밀턴은 아직 F1에서 활동할 뜻을 밝혔지만, 현재 계약상 옵션을 활용하면 2028년 시즌까지 페라리에서 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8년이면 해밀턴은 44세에 가까워진다. 45세에도 현역으로 경쟁하고 있는 페르난도 알론소가 있지만, 이 정도의 장수는 F1에서 흔한 사례는 아니다.
따라서 2029년에는 페라리의 시트 하나가 비어 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더 이른 시점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페라리 주니어 프로그램 소속으로 현재 하스에 임대된 올리버 베어먼은 내부 후보 중 한 명이다. 하지만 페라리의 상징적인 붉은 레이싱 슈트를 입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자리를 원하는 드라이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레드불이 다시 경쟁력을 찾느냐가 핵심
베르스타펜의 2030년까지 재계약이 레드불의 미래를 완전히 고정한 것은 아니다. 레드불과 베르스타펜 모두 이번 계약에 과거 이적설의 핵심이었던 이탈 조항이 포함됐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현재 레드불의 경쟁력은 베르스타펜이 기대할 수준과 거리가 있다. 메르세데스와 페라리, 맥라렌에 뒤처진 상황에서 베르스타펜이 장기간 이런 성적에 만족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베르스타펜은 우선 레드불에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시간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2028년을 앞두고 다시 이적설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메르세데스와 맥라렌이 최근 몇 년 동안 실제로 베르스타펜 영입을 논의했던 만큼 두 팀과의 연결고리는 이미 존재한다. 해밀턴이 페라리를 떠나는 상황까지 겹친다면 페라리 역시 잠재적인 선택지로 거론될 수 있다.
‘빅4’ 구도를 깨는 팀이 등장한다면
드라이버 시장을 뒤흔들 또 하나의 변수는 새로운 강자의 등장이다. 2026년 새로운 파워유닛과 섀시 규정이 도입되면서 여러 팀이 상위권 도약을 기대했지만, 현재까지는 기존 빅4의 구도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장 큰 기대를 받았던 팀 중 하나가 애스턴 마틴이다. 하지만 시즌 초반 기대에 비해 성적은 크게 떨어졌고, 혼다의 새로운 파워유닛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반대로 혼다가 내년 시즌 초반까지 선두 제조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온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애스턴 마틴에는 세계적인 설계자 아드리안 뉴이가 있기 때문에 파워유닛만 정상 궤도에 오른다면 섀시 경쟁력까지 빠르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애스턴 마틴이든 다른 팀이든 예상보다 빨리 우승 경쟁에 뛰어드는 팀이 나온다면 이야기는 다시 복잡해진다. 지금은 굳게 잠긴 것처럼 보이는 F1의 최상위 시트도 결국 성능과 챔피언십 경쟁력에 따라 다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베르스타펜과 노리스의 재계약으로 상위권 라인업이 안정됐지만, 진짜 드라이버 시장의 변화는 러셀·피아스트리의 팀 내 경쟁, 해밀턴의 은퇴 시점, 레드불의 부활 여부, 그리고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F1의 자리는 계약 기간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누가 가장 빠른 차를 갖느냐에 따라 다시 흔들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