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북단 도시 하얼빈의 겨울은 길고도 고요하다. 눈이 내리면 세상은 온통 하얗게 잠기고, 숨결마저 조용해진다. 훗날 스크린 속 쑨첸의 눈빛을 바라볼 때면 사람들은 그 안에서 비슷한 결을 느낀다. 눈처럼 맑고, 동시에 눈처럼 쉽게 꺾이지 않는 단단함.

1997년 4월 18일,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태어난 쑨첸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성장한 배우가 아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오히려 절제와 훈련에 가까웠다. 아주 이른 나이부터 스스로를 단단히 세우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차가운 환경 속에서 서서히 길러진 인내이자, 소리 없이 쌓여간 자립심이었다.
춤을 사랑했던 그녀는 고향을 떠나 베이징으로 향했다. 베이징무도학원 부속 중등학교에서 7년간 발레를 전공했다. 7년이라는 시간은 반복을 의미한다. 같은 동작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발끝의 통증을 견디며, 거울 앞에서 자신의 자세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간. 발레는 그녀에게 단지 우아한 선을 남긴 것이 아니라, 감정과 호흡을 통제하는 능력을 남겼다. 훗날 카메라 앞에서 아주 미세한 눈빛의 흔들림으로 감정을 전달할 때, 그 절제된 리듬은 이미 연습실 바닥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춤은 그녀의 종착지가 아니었다. 예술 시험을 거쳐 중앙희극학원 연기과에 입학하며, 그녀는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몸으로 이야기를 하던 소녀가, 이제는 인물의 삶을 통해 세상을 말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2016년 영화 Love The Way You Are (我的青春都是你)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 작품은 폭발적인 성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과 같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영화라는 세계의 빛과 그림자를 만졌다. 아직은 풋풋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그 진솔함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대중이 그녀를 또렷이 기억하게 된 계기는 청춘 드라마 Take My Brother Away (快把我哥带走)였다. 그녀가 연기한 스먀오는 겉으로는 거칠고 직설적인 ‘폭력 여동생’이지만, 그 안에는 애정과 의존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쑨첸은 이 캐릭터를 단순한 코믹 요소로 소비하지 않았다. 장난과 다툼 사이에 감정의 결을 심어 넣었다.

형과의 관계는 소란스럽지만 진짜 같았다. 밀치고, 삐치고, 금세 웃는 그 리듬 속에서 성장의 그림자가 스며 있었다. 그녀는 연기한다기보다, 어딘가 익숙한 시간을 다시 살아내는 듯 보였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의 이름은 ‘청춘’이라는 단어와 조용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2018년, 그녀는 Meteor Garden (流星花园)에서 허위안즈 역을 맡았다. 이미 수많은 비교 속에 놓인 작품이었지만, 그녀는 과장 대신 절제를 택했다. 허위안즈는 화려한 악역도, 단순한 라이벌도 아니었다. 기대와 상황 속에 놓인 한 젊은 여성의 고독을 담아냈다. 겉으로는 차분했지만, 미묘한 표정 변화 속에 외로움이 배어 있었다.
2019년의 Wait, My Youth (我在未来等你)는 그녀의 감정 스펙트럼을 한층 넓힌 작품이다. 왕웨이샤오라는 인물은 성실하고 단정한 학생이지만, 단순한 ‘첫사랑의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쑨첸은 인물에게 거리감을 부여했다. 타인의 시선 속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세계를 지닌 존재로 그려냈다.

그녀는 이 드라마의 주제곡 “The Decision with Tears in My Eyes”(闪着泪光的决定)도 직접 불렀다. 약간은 여린 음색이 오히려 캐릭터의 심리와 닮아 있었다. 그 순간 배우와 인물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같은 해 출연한 Sweet Tai Chi (淑女飘飘拳)에서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도 감정의 균형을 잃지 않았다. 빠른 장면에서는 경쾌하게, 감정이 무르익는 순간에는 천천히. 발레에서 배운 리듬감이 연기에도 스며 있었다.
2020년의 사극 로맨틱 코미디 Dr. Cutie (萌医甜妻)에서 그녀는 톈치 역을 맡았다. 시대극 특유의 과장된 표현 대신, 그녀는 인물을 인간적으로 풀어냈다. 화려한 의상과 배경 속에서도 감정은 자연스럽게 흘렀다.
이어 Way Back Into Love (拾光里的我们)에서는 현실적인 청춘을 그렸다. 루자라는 인물은 실수도 하지만, 내면은 단단하다. 직장과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쑨첸은 작은 숨 고르기와 시선 처리만으로도 인물의 고민을 드러냈다.
2021년 Remembrance of Things Past (我在他乡挺好的)는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쉬옌이라는 인물은 타지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청춘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지치지 않으려 애쓰는 얼굴.
이 작품에서 그녀의 연기는 한층 성숙해졌다. 눈물은 폭발하지 않고, 천천히 스며 나왔다. 웃음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했다. 쑨첸은 ‘평범함’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같은 해 말 개봉한 영화 Love Will Tear Us Apart (以年为单位的恋爱)에서는 성인들의 관계를 다뤘다. 대사보다 눈빛이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말하지 않은 감정이 화면을 채웠다.
2022년 Hello, My Orange Lover (你好呀,我的橘子恋人)에 이어, 특히 Wild Bloom (风吹半夏)에서의 고신이 역은 또 다른 도약이었다.
‘야생 고양이’라 불리는 고신이는 반항적이고 직설적이다. 쑨첸은 이전의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날카로운 에너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강함 뒤에는 상처와 갈망이 있었다. 그녀는 인물의 양면성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전환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확장이었다.
2023년 영화 All These Years (这么多年)에서 그녀는 남아선호 사상 속에서 자란 천젠샤를 연기했다. 이 역할은 절제된 감정 표현을 요구했다. 쑨첸은 과장된 오열 대신, 억눌린 표정과 고요한 시선으로 고통을 전달했다.
천젠샤의 성장과 자존감의 회복은 영화의 중심이었다. 그녀는 인물을 통해 상처받은 청춘의 존엄을 그려냈다. 이는 로맨스 배우를 넘어선 깊이였다.
Lighting Up the Stars (照明商店)에서는 특별 출연이었지만, 짧은 등장만으로도 온기를 남겼다.
2024년의 19th Floor (19层)는 서스펜스 장르에 대한 도전이었다. 긴장과 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인물의 내면 변화를 차분히 쌓아 올렸다.
이어진 Fireworks of My Heartland (烟火人家)에서는 가족과 일상의 감정을 다뤘다. 이 시기의 쑨첸은 침묵으로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Youth Against the Wind (迎风的青春), Winter Solstice (冬至) 등 다양한 작품 속에서 그녀는 장르의 폭을 넓혀갔다.
2025년 사극 The Great Merchant (大生意人)에서 창위얼 역을 맡으며, 보다 넓은 서사 속 인물을 소화했다. 사랑에도, 운명에도 주저하지 않는 인물. 그녀의 화면 속 존재감은 한층 확장되었다.
스먀오에서 쉬옌으로, 고신이에서 천젠샤로 이어지는 여정은 단순한 필모그래피가 아니다. 그것은 배우 쑨첸이 성장해온 궤적이다.
그녀는 단숨에 폭발적으로 떠오른 스타는 아니다. 오히려 바람 속에서 천천히 자라는 나무에 가깝다. 요란하지 않지만, 꾸준하다.
외부의 소음 속에서도 그녀는 작품으로 답하려 했다. 화제성보다 지속성을 택했다.
비평가들은 그녀의 연기를 자연스럽고 유연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차분한 온기를 지녔다고 한다. 어쩌면 하얼빈의 눈과 베이징의 연습실이 그녀에게 조용히 빛나는 법을 가르쳐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아직 젊지만, 이미 여러 층의 얼굴을 지녔다. 눈처럼 조용하고, 눈처럼 단단하게.
그리고 그녀가 앞으로 건너갈 역할들 속에서, 또 한 번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