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 다시 한번 자신의 시대를 증명했다. 축구 콘텐츠 매체 매드풋볼이 선정한 ‘21세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최고의 선수 24인’ 명단에서 박지성은 14위에 이름을 올렸다. 단순한 팬 서비스성 순위가 아니다.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같은 구단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이름들 사이에서 한국 선수가 중상위권에 배치됐다는 점은 여전히 의미가 크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의외의 결과처럼 보일 수 있다.
박지성 아래에는 다비드 데 헤아, 로빈 판 페르시, 브루노 페르난데스 같은 더 화려한 기록의 선수들이 있다. 개인 스탯만 놓고 보면 공격 포인트나 세이브 수에서 박지성이 이들보다 앞선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현대 축구는 더 이상 단순 기록 스포츠가 아니다.
이번 평가가 흥미로운 이유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를 얼마나 인정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전성기 시절 맨유에서 가장 화려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장 기능적인 선수 중 하나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체제에서 그는 특정 포지션에 고정되지 않고 경기 흐름 자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쉽게 말해, 박지성은 시스템을 작동하게 만드는 선수였다.
오늘날 축구에서 흔히 말하는 ‘전술적 유틸리티 플레이어’의 초기 완성형에 가까웠다.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압박 강도를 유지했고, 상대 핵심 자원을 봉쇄하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당시 퍼거슨 감독이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나 리버풀·첼시 같은 빅매치에서 박지성을 자주 기용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지금의 데이터 기반 축구 해석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과거에는 득점과 도움 중심 평가가 일반적이었다면, 현재는 압박 성공률, 활동 반경, 전환 기여도 같은 ‘비가시적 지표’가 중요해졌다. 박지성은 이런 시대 변화 이전부터 이미 현대 축구형 역할을 수행했던 셈이다.

반면 단점도 있었다.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폭발력이나 압도적인 개인 기술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팬들이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즉각적으로 기억할 장면은 호날두나 루니에 비해 적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과소평가된 선수’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 기준 자체가 달라졌다.
최근 축구계는 단순한 슈퍼스타보다 ‘팀 구조를 완성하는 선수’를 더 높게 평가하는 흐름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농구에서 스코어러보다 수비와 연결 플레이를 수행하는 선수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흐름과도 유사하다.
박지성이 판 페르시나 브루노 페르난데스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인 퍼포먼스의 파괴력에서는 뒤처질 수 있지만, 팀 전술 기여도와 우승 경쟁에서의 안정성, 그리고 빅게임 영향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실제로 그는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 4회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FIFA 클럽월드컵 우승 등을 경험하며 구단 황금기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단순히 스쿼드 구성원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선택받는 선수였다.
결국 이번 순위는 단순한 향수 마케팅이 아니다.
축구가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 스포츠로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박지성의 가치는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