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기에는 분명히 계속 걷고 있는데도,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침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조급함이 따라붙는다. 조금만 늦으면 무엇인가를 놓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무엇을 놓칠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삶이 노력에 굴복한다고 배워왔다. 더 원하고, 더 밀어붙이면 결국 원하는 지점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호를 기다리고, 전환점을 기다리고, ‘적절한 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기대는 무게가 되고, 미래는 현재를 짓누른다.


그러다 어느 날, 사람이 지친다. 실패해서가 아니라, 계속 기대해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세지 않고, “언제쯤”이라는 질문을 멈추고, 타인의 삶과 자신의 길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날은 그저 하루를 살아낸다.
바로 그때, 조용한 변화가 시작된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흐릿했던 것들이 또렷해진다. 늘 망설이던 선택이 더 이상 어렵지 않고, 마음을 가로막던 존재들이 한 발 물러난다. 우리는 스스로를 밀지 않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기대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시선이 풀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눈 속의 먼지가 가라앉는다. 길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바라보게 되었을 뿐이다.
인연이란 어쩌면 강요할 수 없는 타이밍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충분히 조용해지고, 충분히 느려지고, 자신에게 솔직해질 때, 와야 할 것은 자연스럽게 도착한다.
순조로움이란 모든 문이 열려 있는 상태가 아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를 아는 상태다. 그 앎은 더 많은 생각에서 오지 않고, 과도한 기대를 내려놓을 때 찾아온다.
어떤 길에는 지도도, 확신도 필요 없다. 맑은 눈이면 충분하다. 먼지가 가신 뒤, 갈림길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우리는 아주 조용히 안다. 지금, 제대로 걷고 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