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우 천리쥔(陈丽君)이 고장극 《축낭자》(祝姑娘)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중국 온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다. 상대 배우로는 웨이저밍(魏哲鸣)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모두 공식 발표 전의 정보인 만큼 최종 캐스팅은 제작진의 발표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천리쥔은 오랫동안 월극(越剧)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배우다. 최근에는 영화 《표인: 풍기대막》(镖人:风起大漠) 등을 통해 영상 분야에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백화장 신인상 수상으로 영화계에서의 존재감도 높아졌다.

예능 프로그램 《승풍2024》(乘风2024) 출연 이후 천리쥔이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그는 월극 활동을 계속하면서 선택적으로 영상 및 상업 활동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기존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분야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비교적 독특한 행보다.
이런 상황에서 《축낭자》 출연설이 관심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여성의 남장’ 설정이다.
《축낭자》는 인기 소설 《축낭자 오늘도 구덩이에 빠졌나》를 원작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인공 축잉은 살아남기 위해 남성의 신분으로 관직에 들어가고, 복잡한 권력 다툼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인물이다.
작품의 핵심은 전통적인 로맨스보다 주인공의 성장과 능력, 그리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과정에 있다. 여성 주인공이 사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업과 목표를 우선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고장극 로맨스와 차별점이 있다.
천리쥔과의 높은 싱크로율이 거론되는 것도 이러한 설정 때문이다. 월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쌓은 신체 표현과 인물 구축 경험은 성별이 다른 인물을 표현할 때도 하나의 강점이 될 수 있다. 특히 무대에서 익힌 자세와 동작을 카메라 연기에 맞게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다면, 단순한 의상 변화 이상의 설득력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물론 남장 여성 캐릭터라는 설정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최근 중국 드라마에서도 이와 유사한 캐릭터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의 성패는 남성처럼 보이는 외형보다 캐릭터의 행동과 심리, 성장 과정이 얼마나 일관성 있게 표현되느냐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원작을 드라마로 옮기는 과정 역시 중요한 변수다. 현재 온라인에서 알려진 정보에 따르면 드라마판은 32부작으로 제작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반면 원작의 분량은 상당히 긴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복잡한 관료 사회와 권력 관계,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제한된 회차 안에서 어떻게 압축할지가 각색의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다.
연애선의 유무 역시 논쟁적인 부분이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의 사업과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전형적인 로맨스 구조가 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원작의 방향을 유지해 로맨스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과, 드라마의 서사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일정한 감정선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뉠 수 있다.
웨이저밍이 실제로 출연한다면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중요하다. 단순히 서로 오해하고 갈등하다가 사랑을 확인하는 기존 고장극 로맨스의 구조보다는, 두 사람이 각각 자신의 능력을 갖춘 채 함께 성장하는 ‘쌍강’ 관계가 작품의 주제와 더 잘 맞을 수 있다.
웨이저밍은 여러 고장극에서 활동하며 고대 의상과 캐릭터 표현으로도 주목받아왔다. 천리쥔과의 출연이 최종 확정된다면 두 배우의 외형적인 조합뿐 아니라, 두 인물이 극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관계를 구축할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다만 현재까지 캐스팅과 촬영 일정, 최종 대본 방향 등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남녀 주인공에게 실제로 어느 정도의 연애선이 추가될지는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정보를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
천리쥔의 출연이 최종 확정된다면 《축낭자》는 단순히 ‘남장 여주인공’이라는 설정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월극 무대에서 오랫동안 축적한 연기 경험을 영상 매체의 언어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화려한 캐스팅 자체보다, 천리쥔이 무대에서 구축해온 강점을 카메라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주할 수 있느냐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