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약한 지붕을 골라서 내리지 않고, 바람은 마른 가지를 찾아 흔들지 않는다. 삶도 그렇다. 누군가를 시험하려고 일부러 거칠어지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고, 만나고, 스치고, 때로는 부딪히며 자기 방식대로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일이 어긋날 때마다 묻는다. 왜 하필 나일까 하고. 어쩌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기대고 있던 자리일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기대어 안심하고, 미래에 기대어 평온을 느끼고, ‘당연히 이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 위에 서 있다가 그 생각이 흔들리는 순간 함께 흔들린다. 고통은 변화 때문에 생기기보다 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깨질 때 깊어진다. 누군가는 떠날 수 있고, 마음은 식을 수 있고, 상황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비로소 무너진다.

단단해진다는 것은 아무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흔들릴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에 가깝다. 그것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반복 속에서 자란다. 충분히 잠을 자고, 제때 식사를 하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고,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감각을 먼저 살피는 일. 이런 사소한 습관이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된다. 사람들은 종종 잎을 먼저 본다. 성취, 이미지, 인정, 자리 같은 것들. 하지만 나무를 서 있게 하는 건 화려한 잎이 아니라 땅속으로 뻗어 내려간 뿌리다. 뿌리가 깊으면 바람은 지나가고, 뿌리가 얕으면 작은 흔들림에도 마음이 요동친다.
어떤 사람은 큰 시련을 지나도 담담하고, 어떤 사람은 작은 말 한마디에 오래 아파한다. 차이는 세상의 세기가 아니라 내면의 밀도에 있다. 겉이 단단해 보여도 속이 비어 있으면 쉽게 금이 가고, 겉이 조금 거칠어 보여도 속이 채워져 있으면 쉽게 꺾이지 않는다. 내 안을 채운다는 것은 누군가를 이기거나 인정받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일이다. 지금 나는 무엇에 기대고 있는지, 이것이 정말 필요한지, 두려워서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묻는 시간. 떠나야 할 곳에서는 과하게 설명하지 않고 돌아설 줄 알고, 지켜야 할 자리에서는 흔들려도 남아 있을 줄 아는 태도. 그런 선택이 쌓이면서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삶은 우리를 일부러 밀어내지 않는다. 다만 변할 뿐이다. 계절이 바뀌고, 사람이 오고, 또 떠난다. 우리가 할 일은 왜 이렇게 힘든지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남에게 기대어 서 있으면 그 사람이 흔들릴 때마다 함께 불안해진다. 그러나 스스로 중심을 세우면 세상이 여전히 거칠어도 덜 두렵다. 세상이 부드러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라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겠지만,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를 이길 필요도 없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내가 필요한 것을 알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내려놓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분명히 하는 것. 뿌리가 내 안에 있다면, 바람은 결국 스쳐 지나간다.


